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PF라는 단어를 뉴스에서 볼 때마다 "건설사나 은행 사람들 얘기겠지"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동네 홈플러스 매장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갑자기 그 PF가 제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한 대형마트의 경영 위기가 건물주 펀드, 건설사, 증권사까지 연쇄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구조, 지금부터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PF 부실: 임대료 하나가 끊기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가 제출한 회생계획안이 수행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습니다. 최소 2000억원의 운영자금 조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결정이 왜 유통업계를 넘어 금융권 전체에 파문을 일으키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세일앤리스백(Sale & Leaseback)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세일앤리스백이란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을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한 뒤, 그 건물을 다시 임차해 계속 영업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건물을 팔아 현금을 손에 쥐되, 장기 임차인으로 남는 구조입니다. 홈플러스는 이 방식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연간 약 4000억원에 달하는 임차료를 부담해왔습니다. 영업이 잘 될 때는 유동성 확보 수단이 됐지만, 경영이 흔들리자 그 임차료가 고스란히 짐이 됐습니다.
문제는 그 임대료가 단순히 홈플러스와 건물주 사이의 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건물을 소유한 펀드와 리츠(REITs)는 그 임대료를 바탕으로 금융기관에서 빌린 선순위 PF 차입금의 이자를 갚아왔습니다. 여기서 선순위 PF 차입금이란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가장 먼저 원리금을 돌려받을 권리를 가진 대출, 즉 사업 전체의 뼈대가 되는 핵심 대출을 의미합니다. 임대료가 끊기면 이 이자가 연체되고, 대주단은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할 수 있습니다. EOD란 대출 만기 전이라도 채권자가 즉각 원금 전액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한번 발동되면 사업 전체가 사실상 멈춰버립니다.
제가 이 구조를 처음 파악했을 때 솔직히 좀 아찔했습니다. 투자 상품을 볼 때 배당 수익률이나 예상 수익만 확인하고 기초자산이 어떤 임차인에게 의존하는지는 별로 따져보지 않았으니까요. 임차인의 사업이 흔들리면 배당이 날아갈 수 있다는 건, 막상 이런 사례를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홈플러스 관련 PF 부실 위험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홈플러스 영업 중단 → 임대료 수입 단절
- 펀드·리츠의 선순위 대출 이자 연체 → EOD 위기
- 후순위 보증을 선 건설사, 금융사가 손실 직격탄
우발채무: 8700억 보증을 진 건설사들은 지금 어디쯤인가
이 사태에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곳은 홈플러스 점포 개발사업에 신용보강을 제공한 건설사들입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건설, DL이앤씨, GS건설, SK에코플랜트 등 4개사가 홈플러스 20개 현장에 참여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관련 보증 규모는 총 8719억원에 달합니다(출처: 한국신용평가).
여기서 우발채무란 현재는 부채로 계상되지 않았지만,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실제 갚아야 할 빚으로 전환되는 잠재적 채무를 말합니다. 평소엔 숫자에 잡히지 않다가 사고가 터지면 한꺼번에 재무제표에 폭탄처럼 박히는 구조입니다. 롯데건설 혼자 7294억원, DL이앤씨가 1425억원을 보증한 상황입니다.
진짜 걱정되는 부분은 선순위 대출의 만기 일정입니다. 홈플러스 점포 개발사업에 얽혀 있는 선순위 PF 차입금은 약 1조 5000억원 규모인데, 이 중 9000억원가량이 올해 하반기에, 나머지는 내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만기를 맞습니다. 만약 선순위 대주단이 차환(만기 연장)을 거부한다면, 후순위 보증을 선 건설사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채무를 직접 떠안아야 할 수 있습니다.
중소형 증권사들도 안심할 처지가 아닙니다. 올해 3월 말 기준 중소형 증권사의 기업대출은 6조 697억원으로, 한 분기 만에 약 5000억원 급증했습니다(출처: 한국신용평가). 표면적인 고정이하자산비율은 2.7%로 낮아 보이지만, 이는 전체 운용자산이 늘어난 분모 효과일 뿐입니다. 고정이하자산의 절대 규모는 오히려 늘었고, 대손충당금도 2조 814억원에서 2조 1100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제가 경험상 이런 지표는 겉숫자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왔는데, 이번 경우는 그 방향이 영 좋지 않습니다.
유경PSG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 코람코자산운용 같은 세일앤리스백 주도 운용사들도 경영난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운용사들은 고유재산보다 외부 투자자(LP) 자금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임대료가 끊기면 투자자의 원금 손실뿐만 아니라 운용사 자신도 수수료 수익 급감과 소송 위험에 동시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또한 공실이 된 대형마트 부지들이 새로운 PF 개발 사업 매물로 한꺼번에 쏟아질 경우, 이미 침체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공급 부담이 더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정부가 전체 PF 익스포저 감소를 발표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총액 감소가 개별 사업장의 위험 해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반기 만기가 집중된 이 구조에서 차환이 막히면 연쇄 손실은 예상보다 빠르게 번질 수 있습니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를 보면서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투자 상품을 고를 때 수익률만 볼 게 아니라, 기초자산이 누구의 임대료에 기대고 있는지, 부채 만기는 언제인지, 보증 구조는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안정적으로 보이는 부동산 임대 수익도 결국 임차인의 경영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처럼 하반기 대규모 만기가 몰려 있는 시점에는 보유 중인 금융 상품의 기초자산을 한 번쯤 다시 점검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또는 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 시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